박정권 전 우원식 국회의장 정책비서관
과거 논밭을 팔아 자식을 서울로 보냈던 부모의 마음이나, 주거 불안정, 높은 생활비, 자녀와의 물리적 거리 등을 감수하면서도 기회 자본을 제공하는 오늘날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부모로서 자식을 지방에 머물게 하는 것이 '경쟁에서 낙오시키는 것은 아닐까'하는 강한 불안감도 존재한다. 부모는 자신이 겪었던 기회의 한계를 자녀가 똑같이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방의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마음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더 나은 기회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에서 출발한다.
'말(馬)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도 있다.
조선시대 한양은 행정, 군사,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이는 해방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특별시'라는 단일 도시 공간에 경제, 산업, 교육 인프라가 비정상적으로 밀집되는 결과를 낳았다. 수천 년간 쌓여온 집중의 관성을 단기간에 뒤집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기엔 일자리의 양과 기본적인 교육 기회의 격차였다면, 현재는 최첨단 연구시설, 벤처 투자 자본,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부 등 고부가가치 기회가 수도권에만 모여 있어 지방 청년들이 미래 혁신 산업에 참여할 기회 자체가 차단되는 현실이다. 이처럼 고급 일자리, 첨단 산업, 문화·예술, 의료, 명문대 등 기회의 질과 다양성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지방에 머무는 것이 곧 자기 계발과 성공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이다.
지방이 서울만큼의 매력을 갖추려면 단순히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넘어, 국가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 구조적인 변화는 단순히 물리적 인프라의 이전이나 재정적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회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지방에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지방은 중앙 정부의 정책에 예속되어 자체적인 산업 육성이나 교육 개혁에 한계가 있다. 지방이 스스로 미래 산업을 결정하고, 그에 맞는 교육 커리큘럼과 인재 양성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특별 자치권'과 '재정적 자율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일자리와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의 수도권 편중을 넘어, 지역 주도의 혁신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명문대의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지역 대학의 경쟁력 강화 및 지역 인재 채용을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대형 병원, 문화 시설, 교통의 격차 또한 지방 거점 도시의 '삶의 질'을 수도권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고 '숲이 무성해야 나무가 잘 자란다'는 속담이 지금의 시대에 딱 어울린다. 아무리 좋은 재료나 훌륭한 능력이 있어도 다듬고 조직하여 활용해야 가치가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재를 지방으로 보내기보다는, 지방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원을 엮고 키워서 지역의 보배를 창출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 지역(나무)이 제 역할을 하고 건강해야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국가 시스템(숲)이 풍요롭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지방의 청년 유출을 인위적으로 막을 것이 아니라, 지방으로 청년들이 몰려오게 만들어야 한다. 지방을 매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 매력은 단순히 '살기 좋은 곳'을 넘어 '성공하고 성장할 기회가 있는 곳'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기회의 땅이 지방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지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박정권 전 우원식 국회의장 정책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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