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한국 오는 길, 졸업 후 20년 넘게 못 만난 일본 친구도 만날 겸 도쿄에 들렀다. 여섯 살난 친구의 딸은, 그 가족과 함께한 1박2일의 온천여행에서 처음 만난 내 옆에서 자겠다고 할 정도로 사교력 만랩이었고, 아침엔 내 머리를 땋아주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모든 게 느린 걸 미안해 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이 이틀은 그냥 너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정했다고 했잖아, 그걸로 충분해. 그 후 혼자 긴자에서 머문 이틀까지 일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즐겁고 충만한 여행이었다.
같은 동아시아권인데 일본은 의외로 '실패'에 관대한 사회라는 점이 새로웠다. 일본 대학에도 '실적 위주' 평가 바람이 일기 시작했지만, 최근까지도 성과에 상관없이 마음껏 원하는 연구를 하도록 지원해주는 시스템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본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힘이 그거였구나. 일본의 여러 지방 도시들에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수백년된 동네가게와 장인의 존재도, '사소한' 어느 한 분야에서 마스터가 되기까지 그 지난한 시도와 실패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힘에서 나온 것일테고.
끊임없이 일류와 완벽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열정은 수많은 세계적 성취를 이루었다. 동시에 그 빛나는 성취 이면의 그림자도 더욱 짙어지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할 만큼 강해지지 않았을까? 살아갈 수록 깨닫게 되는 건, 삶도 나 자신도 '완벽한' 혹은 '완성된' 버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바쁜 일이 끝나고 근사한 축하할 거리가 생긴 이후로 파티를 미루는 대신, 지금 이 순간, 외롭고 슬프고 지치고 바쁘고 가난한 나라고 해도, 그럼에도 올 한해도 살아내느라 수고한 나 자신과 불완전한 그대로 수많은 좋은 것들을 담고 있는 내 삶을 조용히 축하해보면 어떨까?
대구의 성당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찰리 맥커시의 그림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넘친다. "사랑은 네가 특별하길 요구하지 않아." "삶은 힘겹지만 넌 사랑받고 있어."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말하기가 어려워 "우리가 여기 함께 있어서 기뻐"라고 말한다는 두더지처럼, 한국, 특히 경상도 가족들은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한 듯하다.
80대 중반인 아빠는 조금씩 병원다니실 일이 늘어간다. 동생이 바쁜 와중 짬을 내어 아빠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 분초를 다투며 학기말 성적 채점을 하던 나는 문자를 넣었다. 몇시쯤 끝날 것 같아? 30분쯤 뒤. 집 앞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점심 먹을까? 함께 점심을 먹고 동생이 떠나는 길, 그 뒷모습을 보며 배웅하는 아빠와 함께 그 순간의 우리들을 보며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부모라는 이름의 존재로 함께 묶인 가족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냥 지금 함께 하는 이 순간을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영남일보 독자님들, 우리가 여기 함께 있어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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