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초등학생, 중학생 사이서 김장조끼 인기
전문가 “10대들, 이유 없어도 재미있으면 끝”
26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김장조끼를 판매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할머니들이 김장할 때 입던 작업복으로 알려진 '김장조끼'가 대구지역 10대 남자아이들까지 사로잡으며 뜻밖의 유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강렬한 색감과 꽃무늬가 화려할수록 오히려 '힙하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구 북구에 사는 중학교 1학년 김모군은 최근 어머니에게 '김장조끼'를 사달라고 졸랐다. 누빔 안감이 들어간 조끼에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새겨진, 흔히 김장철 할머니들이 입던 바로 그 옷이다. 어머니가 "그 김장할 때 입는 조끼인 거냐"고 묻자 김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 앞 마트에서도 판다. 가격도 9천원쯤 한다"고 말했다.
입는 이유는 단순했다. 편하고 따뜻하다는 것. 학원을 오갈 때는 패딩 안에 껴입고, 집에서는 실내복으로 입으면 체온 유지가 잘 된다고 했다. 촌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이 다 입는다"는 이유가 컸다. 전날 스케이트장에 함께 간 친구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김장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더 어린 연령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유치원생들 사이에서는 김장조끼가 실내복처럼 활용된다. 촌스럽다는 인식보다는 '활동하기 편하고 따뜻한 옷'이라는 실용성이 먼저 작동한다.
서문시장에서 판매 중인 김장조끼. 김지혜 기자
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26일 서문시장에서도 '김장조끼'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손님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사이즈를 묻는가 하면 사이즈 가늠이 되지 않는 어린 자녀에게 직접 입혀보는 모습이었다. 상인들은 김장조끼 판매하랴, 물량 소진 전 다시 채워 넣으랴 분주했다.
김장조끼를 판매하는 60대 A씨는 "요새 부쩍 초등학생들이 엄마 손잡고 많이 사러 온다. 어르신들은 어린 손자, 손녀들 꺼 많이 사가신다. 사이즈도 어른들용, 어린이용으로 나오는데 어린이용이 최근엔 더 잘나간다. 많을 때는 하루 200장 넘게 팔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장조끼' 가격은 원단과 마감에 따라 5천원 또는 8천원. 코르덴 소재 옷감 여부나 단추 장식, 마감 처리 방식 등에 따라 책정가가 달랐다.
서울에서 초등학생 4명과 시장을 찾았다는 안규연(여·22)씨는 "여자 아이들이다 보니 꽃무늬 장식이 들어가서 특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미 SNS를 통해 알려졌지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두 장 샀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여행 온 권유빈(12)양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건 다 해보고 싶다. 할머니들이 입을 것만 같은 옷인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하니 재미있다"며 웃었다.
사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조끼는 '김장조끼'가 아닌, '카리나 조끼'로 불리고 있다. 아이돌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김장조끼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리자 "카리나가 입으니 힙해 보인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후 학교나 학원, PC방 등 일상 공간에서 김장조끼를 입은 모습이 사진으로 공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중학생 사이에서 불고 있는 김장조끼 유행은 '밈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숏폼 영상, 챌린지처럼 따라하기 쉬운 구조가 확산을 부추겼다는 것.
계명대 김광협 교수(광고홍보학과)는 "10대·Z세대·알파세대 사이에서 따라하며 즐기는, 다소 어이없는 느낌의 콘텐츠를 밈이라고 한다. 진지한데 웃기고, 이유 없어도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 특징"이라며 "유명인을 따라하는 것을 넘어 자기 표현이자 놀이가 된다. 유행은 길지 않겠지만 형태를 바꾸며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요소가 강하고,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특징이다. 결국 숏폼 중심의 놀이문화가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 옷이 트렌드가 됐다… 김장조끼의 재등장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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