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과 인재, 범죄가 겹친 한 해…지역 사회를 흔든 결정적 순간들
대형 산불에서 스토킹 살인까지, 대구경북을 멈춰 세운 사건 연대기
무너진 안전과 흔들린 신뢰…반복된 사고가 던진 경고
대구 서구 염색산업단지 인근 하수관거에서는 지난 1월 보랏빛 오수 유출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폐수유출이 확인됐다. 영남일보DB
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종착역에 다다랐다. 대구경북에도 올 한해 대형 산불과 청도 열차 사고 비극, 대구 스토킹 범죄로 인한 참극, 지방의회 해외연수 비리 등 굵직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 대구경북을 들썩이게 한 10대 사건·사고를 정리해봤다.
◆ 대구 서구 염색산단 폐수 유출
올해 1~3월 대구 염색산업단지 일대에서 보랏빛·분홍빛·흰색 폐수 유출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잇단 폐수 유출에도 원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서구일대 주민들은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환경당국은 결국 전수조사로 방식을 전환해 의심 사업장 19곳을 조사했고, 이 중 9개 업체에서 물환경보전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폐수 무단 유출 업체 1곳을 포함해 관련 업체들이 고발·행정처분됐고, 관리 책임을 물어 염색산단관리공단도 고발됐다. 이 사고는 노후 산업단지의 환경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지난 22일 대구 달성군 세천늪근린공원에서 열린 고(故) 박건하군 추모비 제막식에서 유가족과 친구들, 달성군청 관계자들이 추모비 제막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DB
◆ 달성 저수지 사고…중학생의 의로운 희생
지난 1월13일 대구 달성군의 한 저수지에서 중학생 박군이 물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려다 숨졌다. 박군은 5명이 빠진 위급한 상황에서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3명을 구조했고, 끝까지 구조를 시도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지역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 사건이었다. 달성군은 박군을 보건복지부에 의사자로 신청해 5월 최종 지정받았고, 추모비를 세워 그의 희생을 기렸다. 한 학생의 의로운 선택은 공동체와 생명의 가치를 새삼 일깨운 계기가 됐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근무 중인 간호사가 신생아를 향해 '낙상 마렵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 대학병원 간호사의 신생아 폭언 논란
4월 대구 한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부적절하게 다룬 사진과 폭언성 문구를 SNS에 게시한 사실이 알려지며 큰 파장이 일었다. 이후 병원은 해당 간호사를 파면 했고, 자체 조사 과정에서 간호사 2명의 유사 사례도 추가 확인됐다. 병원장은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경찰은 7월 이들 간호사 3명을 아동학대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이 사건은 의료 현장의 윤리 의식과 환아 보호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촬영한 대구 북구 함지산 모습. 대형 산불에 탄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영남일보DB.
지난 3월 30일 안동시 일직면 국곡리 마을에 한 주민이 산불에 전소된 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영남일보DB>
◆경북 북동부지역 초대형 산불과 대구 함지산 산불
올봄 대구와 경북 북부권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 산불은 지역 사회에 큰 피해를 남겼다. 4월28일 발생한 대구 북구 함지산 산불은 나흘간 이어지며 산림 310㏊(축구장 434개 규모)를 태웠다. 그 불길은 도심 인근 주거지까지 접근해 시민 불안을 가중시켰다. 경찰은 담뱃불 실화로 60대 남성을 입건했다.
앞서 지난 3월엔 의성에서 발화한 산불피해는 가공할 만했다. 안동·청송·영양·영덕까지 덮치며 산림 4만5천㏊를 소실시켰다. 주민 1만5천여 명이 대피했고 재산 피해는 1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됐다. 기후위기 시대에 산불 대응 체계의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의회 배지. 연합뉴스
◆ '항공료 뻥튀기' 대구 지방의회 해외연수 파문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점검과 영남일보 단독보도로 대구 지방의회 해외연수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수사 결과, 기초의원과 공무원, 여행사 관계자 등 총 22명이 항공료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3천800만원을 허위 청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복된 '외유성 출장' 논란에 대한 시민 비판은 거셌다. 정부는 지방의원 공무국외출장 규칙을 강화하고 사전 공개 및 주민 의견 수렴, 제재를 대폭 늘렸다. 지방의회 예산 집행의 불투명성과 견제 장치의 부재가 낳은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자신이 스토킹하던 5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윤정우(48). 영남일보DB
◆ 달서구 스토킹 살인…윤정우 징역 40년
지난 6월 대구 달서구에서 스토킹 피해 여성을 살해한 윤정우에게 법원은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지속적인 스토킹과 협박, 신고 이후의 보복 심리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범행이었다. 이 사건은 스토킹 범죄 대응 체계의 실효성 논란을 재점화했다. 반복된 신고에도 범행을 막지 못한 점에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전 차단과 피해자 보호 장치 강화 필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지난 7월17일 발생한 대구 북구 노곡동 침수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영남일보DB
◆ 15년만에 다시 발생한 대구 노곡동 침수…전형적 人災
지난 7월 집중호우로 대구 북구 노곡동 일대가 침수됐다. 조사 결과 배수시설 관리 부실과 제진기 지연 가동 등 인재로 결론 났다. 특히 광역·기초 지자체 간 관리 이원화가 초기 대응을 늦춘 주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후 대구시와 북구청은 관리 체계 일원화 및 시설 보완에 착수했다. 이번 침수사고는 기후위기 속 도시 방재 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준 사례다. 특히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고, 상시 점검과 즉각 대응이 가능한 통합 관리 체계 구축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시험지 절취 사건과 관련, 학부모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 후 법원을 빠져 나오고 있다. 영남일보 DB
◆ 안동 시험지 유출 사건
안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7월, 전직 기간제 교사와 학부모 등이 공모해 시험지를 여러 차례 절취·유출한 사실이 드러나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심야 무단 침입과 보안 정보 미삭제, CCTV 관리 부실 등 학교 보안 시스템 전반의 허점이 확인됐다. 관련자들은 구속 또는 수사를 받았고, 성적 무효 처리 논란이 불거졌다. 이 사건은 공정한 시험과 교육 신뢰를 근본부터 뒤흔든 구조적 문제로 평가됐다. 교육당국은 시험지 관리 매뉴얼 전면 점검과 함께 보안 시스템 강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8월19일 오전 10시 55분쯤 경북 청도군 경부선 남성현역에서 청도역 사이를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가 안전점검하던 작업자를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 1명이 경상을 입었다. 이날 오후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경찰, 소방, 코레일 등 관계자들이 선로를 조사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 청도 무궁화 열차 사고
지난 8월19일 청도군 경부선 남성현역 인근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점검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을 덮치는 사고가 났다. 2명이 숨지고 5명이 크게 다쳤다. 피해자들은 철도 시설 안전 점검을 위해 이동 중이던 인력으로 확인됐다. 사고 이후 정부와 코레일은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반복돼 온 철도 작업자 안전사고에 대한 근본적 대책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 내 사고가 발생한 H아연 가공 업체 저수조 설비 외부 전경. 정부 부처 합동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 경주 아연가공업체 질식 사고
경주시 안강읍 한 아연가공공장에서 지난 10월25일 밀폐된 지하 수조 작업 중 유해가스에 노출돼 작업자 3명이 숨졌다. 환기와 가스 측정, 보호장비 착용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반복되는 밀폐 공간 산업재해의 위험성과 현장 안전관리 부실을 지역사회에 새삼 상기시켰다.
최시웅
조윤화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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