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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時時刻刻)]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찬사와 ‘쿠팡이 없다면’이라는 공포 사이에서

2025-12-30 06:00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쿠팡이 창립 초기부터 내걸었던 이 도발적인 슬로건은 한국인의 일상을 바꾼 혁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문장이 다시 소환된 계기는 찬사가 아닌 '사건'이었다. 최근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역설적으로 쿠팡이라는 플랫폼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증명했다. 약 3천만 건에 달하는 고객 정보 유출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넘어, 거대 플랫폼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사회 전체에 각인시켰다.


이 지점에서 쿠팡의 책임은 엄중하다. 플랫폼의 성장과 편의는 보안과 신뢰라는 토대 위에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개인정보 보호와 투명한 소통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의무다. 더욱이 경영진의 불통 이미지가 더해지며 대중의 실망감은 분노로 변하고 있고, 유출 사고를 기점으로 쿠팡을 향한 국가적 압박은 단일 사안의 책임을 넘어 전방위적 공세로 번지고 있다.


정보 유출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과 영업정지까지 검토하고 있고, 검찰과 국세청 역시 전례 없는 고강도 수사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공정 경쟁과 조세 정의는 부정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이 모든 조치가 특정 시점에 한 기업을 향해 집중될 때, 그것은 감독과 교정을 넘어선 '본보기식 옥죄기'로 비칠 위험이 크다. 우리는 여기서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만약 이 압박의 끝에 정말로'쿠팡이 없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 거대한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첫째는 소비자 주권의 붕괴다. 쿠팡의 유료 멤버십 '와우' 가입자는 약 1천400만 명에 달하며, 월간 이용자는 3천만 명에 육박한다. 쿠팡은 이제 특정 기업을 넘어 국가적 생활 인프라다. 수조 원을 투입해 구축한 '로켓배송' 망이 규제와 불확실성으로 위축된다면, 소비자는 다시 배송비 부담과 수일의 대기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고물가 시대 가계 부담을 완화해온 유통 효율의 후퇴를 의미한다.


둘째는 고용과 소상공인 생태계의 위기다. 쿠팡은 2025년 8월 기준 9만 2천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고, 물류센터는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일자리 엔진이다. 또한 입점한 21만 소상공인에게 쿠팡은 대형 유통사의 높은 문턱을 넘게 해준 사실상 유일한 전국 단위 판로다.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징벌은 기업이 아니라 그 위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와 영세 판매자에게 가장 먼저 전가된다.


셋째는 유통 주권과 글로벌 경쟁력의 약화다. 현재 한국 시장은 알리, 테무 등 중국계 거대 자본(C-커머스)의 공습에 직면해 있다. 이들이 초저가를 무기로 점유율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에만 현미경 규제를 들이대는 것은 안방을 내어주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 대만 시장에서 'K-유통'의 깃발을 꽂으며 중소기업의 수출 활로를 여는 글로벌 성과를 감안하면, 국내에서의 과도한 압박은 국익 차원의 손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찬반의 이분법이 아니다. 쿠팡은 개인정보 보호와 노동 안전, 공정성 문제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지고 쇄신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기업의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는 수준의 가혹한 징벌이나 포퓰리즘적 공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기업에 도덕적 완결성을 요구할 순 있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해서 경제적 가치와 존재 이유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기업의 본질은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하고 일자리를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이 공포가 아닌 진정한 찬사로 남으려면, 기업이 스스로 혁신하고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비판과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지금 과연 문제를 바로잡고 있는가, 아니면 기능하던 생태계 하나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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