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로라 보하난이라는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원시부족민들에게 '햄릿'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부족민들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그 햄릿이라는 자가 너무 나쁜 놈이라서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왜 그가 나쁜 놈이냐고 물어보니, 요는, 그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같은 것에 홀려서는 자신의 어머니와 숙부를 근거 없이 미워해서 일을 망쳤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자기 숙부가 자기 어머니와 결혼을 하면 누군들 화가 나지 않겠느냐고 되물으니 이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형이 죽었을 때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 것은 미풍양속인데 그걸 가지고 화를 내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위 형사취수(兄死取嫂)의 전통을 이야기한 것인데, 실제로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서도 조선시대까지 도서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던 일종의 '보험제도'이자 '복지제도'였다. 뱃사람들은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남겨진 동생이 형수와 그 조카들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는 공동체의 생존 원칙이 있었던 것이었다.
문화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오해는 마냥 웃어넘길만한 문제는 아니다. 이것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심하면 유혈사태로까지 번진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문화권에 들어갔을 때에는 쓸데없이 소동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항상 기억해야 한다. 언뜻 봤을 때 미개해 보이는 문화라 해서 함부로 멸시하지 말 것이며, 악의 없는 내 행동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모욕이 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할 것을.
얼마 전 신태용 감독이 울산HD 사령탑에서 돌연 경질됐다. 선임된 지 고작 2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터라 다들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그 뒤 신 감독의 폭로성 기자회견과 울산의 모 고참 선수의 부적절한 세레모니 등이 이어지면서 이 사건은 큰 화제가 되었다. 한 사람의 K리그 팬으로서 이 사태가 빨리 진정되길 간절히 바랐다. 이득 보는 사람은 없는데, 축구계 전체의 손해는 계속 누적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발 시즌이 끝나는 날, 울산의 고참 선수들 입에서 "이유야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신 감독님이 불명예스럽게 퇴장하는 그림이 나오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정도의 성숙한 멘트가 나오길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또 다른 중견 선수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점화되어버렸다.
"당한 사람이 폭력이라고 느끼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수의 이 인터뷰 직후 신 감독은 전 국민 앞에서 '폭력 감독'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 뒤 해당 멘트가 나오게 된 영상이 모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이번에는 그 중견 선수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오랜 만에 만난 애제자가 너무 반가워서 웃으면서 찰싹 볼을 쳤는데, 강도가 좀 세긴 했지만 그걸 폭력으로 받아들이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니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세대 간 문화 차이는 미국인과 아프리카의 원시부족민의 그것만큼이나 커지고 있다. 같은 행위가 한 세대에게는 '미풍양속'으로, 다른 세대에게는 '패륜 행위'로 느껴졌으니 말 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항상 다른 문화권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처럼 긴장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되새기자. 언뜻 봤을 때 미개해 보이는 문화라 해서 함부로 멸시하지 말 것. 악의 없는 내 행동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모욕이 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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