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60108023499358

영남일보TV

  • 전시관을 채운 그리운 목소리 … 김광석 사후 30주년 추모 행사
  • 대구 동촌유원지에서 맞은 첫 일출 “새해를 맞는 시민들의 소망”

[김중순의 문명산책] 마야에서 맞는 새해

2026-01-09 06:00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서울의 보신각에서는 묵직한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는 화려한 불꽃놀이 펼쳐지면서 온 세상이 축제 속에서 새해를 맞았다. 그러나 같은 날 같은 시간, 마야의 치첸잇차 피라밋은 조용했다. 그들의 새해는 7월26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날을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기념한다. 시간을 단순한 숫자의 흐름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의 시간은 생명처럼 태어나서 죽고, 사라졌는가 싶으면 다시 돌아오는 살아 있는 존재다.


마야 문명의 달력 체계는 '쫄킨'(Tzolk'in)이라고 하는 260일의 신성력과 '하압'(Haab)이라고 하는 365일의 태양력을 교차시켜 52년을 생명의 한 주기로 삼았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합한 60갑자(甲子)가 각각의 해와 날에 성격을 부여하여 일진(日辰)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때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정해진 신성을 갖는 생명체가 된다. 그것은 길흉과 조화,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 인간의 일생을 관통한다. 음양이 서로 교차하며 계절이 움직이고, 시간은 돌고 돌아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들의 시간은 이러한 순환적 세계관을 정교하게 구조화한 장치다. 특히 '쫄킨'의 260일은 인간의 임신 기간과 같다. 생명의 탄생이 우주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듯, 우주의 시간 또한 생명의 주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마야의 새해는 우주적 질서가 재점화되고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는 상징적 순간이다. 그 직전의 닷새는 무질서의 시간이다. 신들이 잠시 쉬는 동안, 악령이나 혼돈의 기운이 가까워진다. 질서가 잠시 중단된다. 이 공포와 혼돈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새해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새해가 열리는 밤, 그들은 불을 밝히는 의식을 거행한다. 그들이 펼치는 불의 축제는 훨씬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주적 질서의 재점화이다. 밤의 세계, 즉 지하세계를 통과한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 인간의 시간 또한 어둠을 통과해 새 빛을 얻는다. 새해를 '죽음-통과-부활'의 구조 속에서 '빛의 재탄생'으로 이해하는 명백한 우주론적 상징이다.


마야는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을 동일한 리듬 위에 놓았다. 별과 행성, 계절과 인간의 운명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새해란 그 거대한 연결망에 다시 참여하는 순간이고, 인간은 그 순간을 의례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혹은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시간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 박동은 시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새해는 단지 미래로 향하는 문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로 이 세계를 다시 건너갈 것인가를 묻는 성찰의 순간이다. 시간을 인간의 욕망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우주의 리듬에 맞추는 일이다.


우리는 시간 위에 끊임없이 일을 채워 넣는다. 계획과 일정을 짜고, 그리고 또 뭔가 새로운 것을 해내야 한다는 생산성 중심의 시간을 구축한다. 그러나 마야인은 시간을 비우고 열어둔다. 현대의 시간이 직선적 진보의 압박이라면, 마야의 시간은 순환적 호흡이다. 우리가 시간을 관리한다면, 그들은 시간을 보살핀다. 오늘의 우리가 새해를 맞으며 느끼는 조바심과 피로는 시간을 온전히 비우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력을 넘기며, 마야의 태고적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모든 새로운 시간은 한 번 비워진 뒤에야 다시 채워질 수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