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안성기가 별세해 영화인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모든 영화인들이 그를 한국영화계 대표 스타로 인식할 정도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단순히 그 시절 최고의 스타였다는 수준이 아니다. 어느 시대나 최고의 스타는 있을 수 있고, 그런 정도의 스타라면 당연히 화제작에 많이 출연할 것이다. 안성기는 그런 최고의 스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 위상이었다.
괜히 그가 '한국영화 그 자체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게 아니다. 안성기는 화제작에 많이 출연한 정도가 아니라 1980년대에 한국영화계에서 작품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받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출연했다. 어느 한 배우가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싹쓸이'하는 경우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안성기 이전에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물론 신성일 같은 불세출의 스타가 있었지만, 화제작에 많이 출연한 정도이지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싹쓸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안성기는 한국영화 역사에 전무후무한 스타라고 할 수 있겠다.
1980년대는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현대화되면서 질적인 도약을 이루던 시기였다. 1970년대까지 한국영화는 호스티스 멜로물 등이 주류를 이루면서 작품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관객들은 서구 영화를 압도적으로 선호했고 특히 대학생들은 한국영화를 좋아한다고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려하기까지 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자 젊은 감독들이 약진하면서 비로소 한국영화에 새 바람이 불었다. 한국사회의 민낯과 한국인의 욕망, 그늘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서, 신선한 표현 방식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등장한 것이다. 영화계에선 그런 흐름을 '한국영화 뉴웨이브'라고 했다.
아역 배우였던 안성기는 성인이 된 후 무명 시절을 보내다 1980년에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해 비로소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 작품이 바로 80년대 한국영화 뉴웨이브의 출발점이었다. 그 후 새 바람을 일으킨 젊은 감독들은 모두 안성기를 캐스팅했거나 캐스팅하려고 있다. 워낙 찾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50~60년대처럼 겹치기 다작하는 분위기였다면 안성기의 출연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났을 것이다. 80년대엔 그런 다작을 할 수 없어서 제한적인 작품에만 출연했는데 그 작품들이 거의 대부분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이 됐으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80년대부터 거장으로 우뚝 선 임권택 감독부터 이장호, 배창호,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정지영, 강우석 등 안성기와 협업한 감독들을 보면 그야말로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이름들이다. 초기엔 안성기가 선택되는 입장이었지만 나중엔 선택하는 입장으로 올라갔는데 그래도 작품의 질이 계속 유지된 것은 그의 안목이 대단했다는 뜻이다. 안성기는 "배우가 더 존중받는 직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까다롭게 작품을 골랐다"고 이야기했다.
연이은 성공으로 정점에 올랐어도 그는 '화려한 스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초지일관 소탈하고 성실하며 따뜻한 태도로 사람과 작품을 대했다. 바로 그래서 온 영화인과 국민의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80년대는 한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현대화되는 초창기여서 안성기, 조용필 같은 절대적 스타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여러 취향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바로 그게 안성기 같은 절대적 위상이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한 이유다. 그래도 후배들이 작품과 삶을 대하는 안성기의 태도를 배운다면 각자의 영역에서 더 한국영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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