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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갓바위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26-01-08 07:18
이은경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이은경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20대 때 재즈 바를 운영했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 술과 담배, 불규칙한 식사. 체력은 빠르게 바닥났고, 서른을 넘기자 몸이 신호를 보냈다. 그는 깨달았다. "이대로는 오래 글을 쓸 수 없겠다."


하루키는 단순한 선택을 한다. 특별한 목표 없이, 아주 간단하게 집 근처를 천천히 달리는 것. 1982년, 서른셋의 나이였다. 소설을 쓰지 않는 날에도, 여행 중에도, 원고가 막히는 날에도 달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거리만큼 달리고, 같은 시간 동안 글을 썼다.


하루키는 풀코스 마라톤을 수십 차례 완주하고, 100㎞에 달하는 울트라마라톤에도 도전했다. 기록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상위권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나는 대체로 중간보다 뒤쪽에서 달린다. 하지만 끝까지 달린다." 재능 없는 오랜 달리기 끝에 비로소 그는 고백한다. "나에게 글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은 재능이 아니라 체력이다."


나에게 하루키의 달리기와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 갓바위를 오르는 일일 것이다. 주 5일 근무가 시작되고 덤으로 얻은 휴일을 나는 갓바위 등산으로 시작하고 있다. 천성이 게으르고, 운동이라면 질색을 하는 내가 6년째 갓바위 산행을 이어가는 것은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수수께끼다. 이제는 등산이 너무 좋아졌다거나, 산을 오르는 것쯤 식은 죽 먹기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이렇게 적는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왜 이렇게 힘든가, 왜 이 힘든 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갓바위는 멀어진다.


6년 전의 갓바위 산행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고통의 깊이와 끝을 안다는 것 그리고 고통을 지금 이 순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고통은 피할 수 없으나 받아들이는 방식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힘들고, 지치고, 그만두고 싶지만, 저 멀리 손에 잡힐 듯한 갓바위를 바라보며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다리야 끊어질 듯 아파라, 심장아 터질 듯 요동쳐라. 그래봤자 이제 곧 정상이다. 한 걸음만 더, 한 번만 더. 그렇게 1천365개 계단을 오르다 보면 갓바위 부처님께서 어서 와라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사람들은 새해를 거창한 변화의 시작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 삶을 바꾸는 것은 피하고 싶은 고통을 이겨낸 조용한 반복이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자기 삶의 박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비교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스스로의 호흡에만 귀를 기울이는 하루키의 고독한 달리기는 닮고 싶은 삶의 태도다. 하루키의 달리기에서, 갓바위 등산에서 나는 인간이 자기 삶을 견디는 방식, 목표보다 리듬을 지키는 삶, 빨리 가는 것보다 그만두지 않는 선택을 배운다.


새해의 시작에서 우리는 무엇을 다짐해야 할까. 더 빨리 가겠다는 결심보다 더 오래 가겠다는 약속, 더 많은 것을 이루겠다는 목표보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태도. 그러므로 새해는 거창한 출발선이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 시간이다. 조용히, 묵묵히, 자기 삶의 속도로 달리기 위해.


이은경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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