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십 여일이 흘렀다. 시간은 자주 그렇게 우리를 앞질러 저 혼자 멀리 가버리는 느낌이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우리의 감각을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여기며 과장할 필요는 없다. 시대의 요구와 더불어 어떠한 삶의 형식을 가졌는지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차이를 지닌다. 시간이 우리를 어떤 방식으로 앞질러 가는지 예민하게 관찰할 때 우리는 자신이 사는 모습을 더 잘 들여다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되어가고/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간다.// 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
『생물성』(문학과 지성사, 2009)이라는 시집에 실린 신해욱 시인의 「축, 생일」이라는 작품이다. 첫 연부터 묘한 표현이 읽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이목구비가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말을 어떻게 읽어야할까. 시를 해석할 때는 시에서 대단한 의미를 발견하려하기보다 일상의 경험을 유추해보는 편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대부분의 좋은 시는 장삼이사의 평범한 삶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 구절과 유사한 우리의 일상적 표현을 찾아보자. 가령,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구절은 어떨까.
바쁜 일상 속에 생일을 맞은 자가 있다. 그날의 주인공으로 특별하게 대접받는 파티가 열린 것도 같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절묘하게도 어색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은 누구에게나 조금은 익숙하고, 또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본 문제일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기분에 빠지는 것인지 곰곰이 반성해본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했다고 착각하는 기분들이 알고 보면 명확히 사회적 산물일 때가 많다.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간다"는 표현은 먹고 사는 일에 중독된 삶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 바 '먹고사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요당하고 그것에 사로잡힌 삶이 그것이다. 먹고 사는 일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절대적 중심을 차지하는 형국은 온전한 삶의 모습으로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정신의 고공비행을 유도하는 말은 아니다. 가령 우리 대부분은 '○○이(가) 밥 먹여 주냐'는 말을 한두 번쯤은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은 여럿이다. 친구, 사랑, 예술, 정의, 도덕, 영혼, 진리, 정치 등등. 따지고 보면 다 내 자신이 되어가는 일에 소중한 항목들이 아닐 수 없다. 저 목록을 오래 돌보는 일은 한 사람의 삶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한다. 아무리 시간이 빨리 흐른다 손치더라도 저 ○○의 자리를 열심히 채워본 사람에게는 남다른 삶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의 삶이 지닌 존엄을 증명한다. 늦은 인사지만 모두가 더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 자신을 좋아하는 한 해를 맞으라는 의미에서 '축, 새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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