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사이,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우리는 지금 자기 통제력이 빠르게 약화해 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즉각 반응하며,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쉽게 포기한다. 기다림 대신 즉시 보상을 요구하는 모습은 더 이상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을 부추기는 자극에 둘러싸여 산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라는 다짐은 휴대전화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진다.
문제의 핵심은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신의학자 빅터 프랑클은 인간의 품격이 바로 그 짧은 찰나의 공간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은 그 여백을 거의 지워버렸다. 클릭 한 번에 정보가 도달하고, 손가락 움직임 한 번에 무한한 자극이 소환된다. 뇌는 도파민 보상에 길들고, 전두엽의 억제 기능은 약화한다. 판단이 작동하기도 전에 행동이 먼저 나간다. 이 '사이의 거리'가 바로 자기 통제력인데, 우리는 그 거리를 잃은 채 본능에 이끌려 살아간다.
이 사회의 피로는 단순한 과로의 결과가 아니다. 즉각적인 반응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 뇌는 한시도 쉴 틈을 갖지 못한다. 생각의 여백이 사라지면 인간은 반응의 존재로 퇴행한다. 일상의 자극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삶은 겉보기에는 연결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내면의 중심을 잃게 만든다. '끊임없이 접속되어 있으면서도 더 외로운 세대'라는 진단은 이 구조적 피로를 정확히 가리킨다. 자기 통제력의 회복은 결국 '속도'보다 '깊이'를 회복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감정 조절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말다툼에 폭발하고, 온라인에서는 분노를 여과 없이 쏟아낸다. 예전 같으면 삼켰을 말들이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는 '좌절 내성', 곧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근력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아이는 작은 실패에 "나는 안 돼."라며 물러서고, 어른은 피로와 지루함을 이유로 일을 미룬다. 불편함을 감내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힘이 사라진 자리에 회피와 합리화가 들어섰다.
이 약화를 극복하려면 먼저 자기 통제력이 훈계로 길러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참아라."라는 말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 통제력은 근육처럼 작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만 강화된다. 아이에게는 금지가 아니라 '짧은 몰입의 성공 경험'을, 어른에게는 의지의 과신보다 '환경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를 의식적으로 줄이는 것, 그것이 실질적인 첫걸음이다.
기다림과 불편함도 의도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지루함을 즉시 자극으로 덮는 습관을 멈추고, 인내를 '지적 활동'으로 회복해야 한다. 인내는 단순한 참음이 아니라 미래의 가치를 위해 당장의 즐거움을 유예하는 선택이다. 아이에게는 결과를 감당할 기회를 주고, 어른에게는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짧은 단절의 연습이 필요하다. 작은 불편함을 기꺼이 견디는 힘은 곧 자기 존중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언어로 다스려야 한다. "화가 났다.", "지금은 참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순간, 감정과 행동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말로 정리된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된다. 감정을 명명하는 능력은 곧 자기 통제의 시작이다. 정확한 언어는 마음의 질서를 세우고, 그 질서가 생각과 행동을 안정시킨다.
어른이 먼저 그 모범이 되어야 한다. 아이는 말이 아니라 모습을 배운다. 식탁 위 스마트폰조차 내려놓지 못하는 부모가 절제를 가르칠 수는 없다. 즉각 반응 대신 한 박자 늦은 생각, 불편함을 견디며 약속을 지키는 태도야말로 가장 강력한 교육이다. 부모가 자신을 이겨내는 절제의 시간은 아이의 무의식 속에 가장 분명한 삶의 지도로 각인된다. 우리가 보여주는 찰나의 멈춤과 인내는 자극의 홍수 속에서도 아이가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고귀한 내면의 유산이 될 것이다.
이제 자기 통제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다. 즉각 반응의 문화를 늦추지 않는 한 우리는 공동체로서의 균형도 잃게 된다. 정치도, 교육도, 언론도 즉각적 자극의 논리에 지배받는다. 자기 통제력이란 결국 개인의 품격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한 사회가 얼마나 '멈출 수 있는가'는 그 사회의 깊이를 드러낸다.
자기 통제력은 성공을 위한 덕목이 아니라 인간을 지탱하는 기본 능력이다. 그것은 더 빠른 자극이 아니라 멈추는 힘에서 비롯된다. 하루 중 짧은 순간이라도 멈추어 생각하고 불편함을 견디는 훈련을 이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잃어버린 '사이의 공간'을 되찾을 것이다. 그 공간이야말로 품격이 자라는 자리이며,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가장 느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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