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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스펀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2008-05-23

1969년 지어진 중구 동인시영

[위클리스펀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69년 대구시가 중구 신천 동신교주변 판자촌 주민 수용차원에서 건립한 동인아파트. 오른쪽 나사식 계단이 인상적이다.

◇…동인 시영아파트, 1969년생입니다

"처음에 입주하니 짐승도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바위틈 같은 데서 살 수 있느냐고 이웃 사람들이 마구 빈정댔어."

현재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중구 동인3가 동인 아파트에서 줄곧 살고 있는 이계술 할머니(72). 1969년 12월 입주할 때만 해도 이 아파트는 옆 동네 사람들에겐 '몹쓸 사람들만 사는 데'로 인식됐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가끔 이 아파트가 40년전엔 최고급인 줄로 알려지는 게 그렇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요즘 같으면 신축 아파트 입주자는 부러움의 대상.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부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파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시 부자는 거의 중구에 포진해 있었고 모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편애했다. 그러나 70~8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구도 '기와집 시대'에서 '양옥시대'로 넘어간다. 그 무렵 남구 대명9동 옛 앞산 중앙정보부 서편 언저리가 대구의 대표적 부촌으로 정착한다. 78년 지어진 서울 강남 현대아파트 투기붐 영향도 대구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69년 동인 아파트가 지어진 동신교 근처의 풍경은 어땠을까?

6·25 피란민으로 대구에 눌러 앉은 판자촌 세상이었다. 기와집 사이에 초가집도 적잖게 깔려 있었다. 특히 이 언저리엔 일제 때 만들어진 수영장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피란민이 독차지해버린다. 대구시는 그게 흉물스러웠다. 그래도 그들을 마구 쫓아낼 수 없었다. 궁여지책 끝에 강구한 시책이 피란민을 일정한 공간에 수용하는 거였다. 서민 아파트 건축 카드인 셈. 당시 동대구 대로가 추진되고 동구 지역의 개발 신호탄이 된 동대구역까지 모습을 드러내던 때였다.

시 주택 관계자들은 서울 아파트 정책을 배워온다. 한국 아파트 역사의 출발점은 32년 일본에 의해 세워진 서울 충정로의 5층 유림아파트.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는 62년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 최초 고층 아파트는 용산구 한남동 11층 힐탑이었고 72년엔 서울 남산에 외인 아파트가 생긴다. 70년 첫 중앙식 온수공급 보일러를 설치한 한강맨션 아파트가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로 기록된다. 대구의 경우 66년 대한주택공사가 남구 대명동에 지은 공무원 아파트에서 지역 아파트 시대가 열린다. 모두 96가구. 이어 68년에는 대구 최초의 시영아파트인 3층짜리 성당 아파트가 등장한다.


◇…아직 연탄 보일러도 사용합니다

첫인상?

'이런 데도 사람이 살 수 있나'였다. 동인아파트란 고딕체 글 밑에 1~5동 숫자가 무뚝뚝하게 앉아 있다. 아파트는 병색이 완연했다. 그 어떤 액세서리도 없다. 1동 초입 살평상에 앉았다. 오른쪽은 신천대로에 접한 이면도로. 물론 초창기엔 저 도로도 없었고 악취를 풍기는 신천이 폐병환자처럼 누워있었다. 그다지 좋은 풍광은 아니었다.

그 언저리에 앉았던 사람은 자기 소유의 땅이 없었지만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기득권 때문에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까지 준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화재가 됐던 이 아파트. 겉만 멀쩡했다. 뼈대만 있을 뿐 살은 붙이지 않았다. 전기·주방·난방 시설은커녕 도배도 안돼 있었다. 싱크대도 없었다. 입주자들은 시측에 모두 110만원을 분할상환했다. 15년전쯤 재건축 논의가 있었지만 반대를 하는 사람이 많아 물건너가고 말았다.

현재 거래가는 4천만원 안팎. 관리비는 월 4천500~5천500원. 일정한 소득이 없는 노인들에겐 상대적으로 살기 수월하겠다.

형식 평수는 42.9㎡(13평)이지만 실은 33㎡(10평) 남짓. 방은 2개, 부엌과 마루가 전부다. 준공 당시 난방도 연탄으로 해결했다. 그땐 우습게도 구들장도 직접 가설했다. 욕조도 없었다. 창문도 직접 해 달았다. 말만 아파트였지 실은 판잣집이나 다를 바 없었다. 벽체 도색도 입주자들이 얼마씩 내고 해결했다. 그것도 지금은 다 벗겨졌지만 다시 페인트 칠하는 비용이 만만찮아 모두 좌시만 하고 있다. 집주인은 아파트 리모델링에 관심이 없다. 추가 돈 안들어가고 사글세만 받겠다는 눈치. 세입자도 사는 게 빠듯해 뭘 고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모두 5개 동이고 1동은 68가구, 5동은 40가구 등 총 272가구이다. 나중에 길이 나면서 20여개 동이 잘려나간다. 입주자 평균 나이는 70대. 신혼부부는 찾을 수 없다. 10% 정도만 집을 소유하고 있다. 초창기부터 사는 이는 25가구 정도. 10여 가구가 연탄 보일러를 사용한다. 영세가구는 25가구. 혼자사는 노인도 50~60명선. 가장 인상적인 건 나사형 계단이다.

은행나무 등 그때 심은 나무가 이젠 아파트보다 더 큰 고목이 됐다. 나무만 전지해줘도 되는 데 이것 역시 나몰라라다.

박일석 소장(67)은 아파트 형편이 너무 안좋아 4월에는 월급을 못받았단다. 박 소장은 "가끔 노인이 죽은 뒤에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면서 "재개발도 어려우니만큼 나무 전지작업과 도색작업이라도 도와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도움을 손길을 애타게 기다린다.


◇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중구 동인시영아파트'의 이야기는 인터넷 영남일보(www.yeongnam.com) y-vision코너에서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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