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읍 김소현씨 카페 입구에 있는 안내문 |
산사태와 폭우로 집을 잃은 이재민이 다수 발생한 경북 예천지역에서 이웃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실종자 수색과 복구 작업에 투입된 이들에게 따듯한 커피와 음식을 제공하는가 하면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착한 업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천읍 남본리의 한 카페 입구에는 '수해복구 관련 군인·소방·경찰·공무원분들께 아메리카노 무상 제공합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안내문은 지난 15일 예천지역에서 기록적 호우로 대규모 실종자가 발생하면서 수색과 복구작업에 투입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피해지역에 커피를 가져다주려 했지만 접근이 어렵다는 말에, 복구 작업 참가자들에게 무료 커피를 대접키로 한 것이다. 기한도 복구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로 열어뒀다.
카페 주인 김소현씨(32)는 "현장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계실 분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커피를)제공하게 됐다"면서 "많은 분들이 잠시나마 편하게 쉬었다 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환길씨 음식점 앞 안내문 |
호명면 도청 신도시의 한 음식점도 구조 당국 관계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수해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소방·군·경찰 관계자분들에게 초밥을 제공합니다. 매장에 오셔서 공무원증 보여 주시면 초밥 세트를 드린다. 편하게 방문 부탁 드립니다'라는 글이 적혔다
이 가게 대표 유환길씨(32)는 "이재민이 발생한 마을을 지나 다 장맛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실종자 수색에 여념이 없는 수색 당국 관계자들을 보고 고마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당분간 초밥을 계속 제공할 예정"이라며 "신도시에 거주하는 구조 당국 관계자분들은 편히 들려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갑연씨를 칭찬하는 글이 예천군청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다 |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예천읍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김갑연씨(69)는 "지난 15일 산사태가 발생한 다음 날 방값을 묻고 그런 뒤에 수해 입은 가정인데요, 집이 쓸려 나갔다"면서 "그래서 그러면 그냥 오시라고 했더니 모자가 오셨다"고 말했다.
지난 17일에는 80대 노부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달려 나가 부축하며 방까지 안내했다. 부부는 산사태로 집이 무너질 까봐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사연을 들은 김 씨는 방값의 반이라도 내겠다는 부부의 요청을 거절하며 "돈은 안 받을 테니 편히 쉬고 가시라"고 했다.
김 씨의 선행은 예천군청 홈페이지에 글이 올라오며 알려졌다. 당시 모텔에 묵었다는 글쓴이는 "어려울 때 받은 이 은혜를 꼭 돌려드리겠다"며 사연을 전했다.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고 수해 복구에 동참한 상인도 있다.
도청 신도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왕윤씨(42)는 지난 18일부터 수해 현장에서 복구작업에 민간인으로 동참하고 있다.
김씨는 "군대에서 수중수색 등과 관련된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어 실종자 수색에 지원했는데 장비가 없어 복구작업에 참여 하고 있다"며 "아침에 자원봉사센터에서 정해 준 장소에서 복구 작업을 한 뒤 3~4시쯤 돌아와 가게 문을 연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중에 목포에서 직장을 다니시는 분이 고향이 예천이라면서 비번날 먼 길을 마다 않고 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면서 "이렇게라도 이재민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구 현장에는 중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힘을 써서 해야 할 일 들도 많은데 대부분 여성 자원봉사자라 안타깝다"고 아쉬워하며 "실종자 분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예천군은 지역에서 집중 호우로 사망한 주민들에 대한 애도 기간으로 선포해 각 읍·면사무소 공무원들은 근조 리본을 착용해 애도를 표현하고 있다. 실종자 수색과 피해 현장 복구가 모두 완료될 때까지 군 단위 축제도 전면 중단했다.
글·사진=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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