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봄여름가을겨울] 1부 봄 이야기-통영에서의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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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전통음식연구가 겸 섬사진 전문작가 이상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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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혁림미술관 바로 옆 동네책방 ‘봄날의 책방’ 앞에서 꽃처럼 앉아 ‘해바라기’ 중인 통영지킴이들. 책방 바로 옆에 통영의 첫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인 ‘봄날의 집’이 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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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골목문화해설사로 유명한 통영라이더 1호 이승민씨. |
한국 벽화촌의 신지평을 열어주었던 동피랑 태평동 입구에 멈춰선다.
동피랑은 행정구역상 정량동과 태평동 일대의 비탈진 언덕마을, 중앙시장의 윗마을이다. 휴가철 동피랑은 너무 인산인해라 통영보다 더 파워풀하다. 하지만 나그네가 동네를 훑어본 결과 동네가 점점 ‘자본’에 감염되고 있는 것 같다. 여기가 벽화마을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벽화의 인프라가 빈약하다. 대신 동피랑 특수를 누린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은 점점 더 맹위를 떨친다. 투기적 자본이 벽화까지 멍들게 할까 걱정이다. 그래도 동피랑은 아직 기본 운치는 있다.
◇‘현대판 윤선도’ 강제윤 시인
1998년 보길도 귀향 후
8년간 300여개 섬 순례
2011년 봄 동피랑 정착
2013년 ‘통영은 맛있다’ 공저
◇사진가 겸 통영음식연구가 이상희
1985년 통영 안착 후
2008년부터 섬사진 순례
2012년 사진전…멍게전문점 운영
강 시인과 ‘통영은 맛있다’ 공저
◇그들이 추천하는 봄맞이 음식
이맘땐 도다리쑥국보다 멍게비빔밥
밥에 멍게 육즙 스미게 숟가락 쓱쓱
주당 속풀이엔 졸복국·시락국 강추
◆통영 라이더의 봄
‘통영라이더’ 이승민씨(47).
“봄이면 뒤꿈치에 닿는 햇살의 감촉부터 달라진다”고 말하는 40대 사내. 통영 토박이인 그는 ‘근육질’로 살아간다. 2014년 11월 통영 첫 문화해설사를 겸한 인력거꾼이 된다. 인력거가 가동되는 곳은 현재 전국 6개소란다.
인력거꾼 겸 해박한 ‘통영통’이라서 TV에도 자주 출연했고 그래서 꽤 유명해졌다. ‘오리’ 같은 인력거를 몰고 종일 통영의 심장 같은 강구안을 축으로 통영의 여러 골목을 누빈다. 강구안 바로 옆 문화광장에서 가끔 기타를 치며 버스킹(1인 거리음악)도 한다. ‘라구요’를 부를 때는 얼핏 ‘통영의 강산에’ 같다. 프랑스에서 온 고고인류학에 빠진 베로니카. 그녀의 웃음은 남망산 조각공원 동백꽃보다 더 붉다. 그녀는 4년 전부터 통영에 반해 통영사람이 돼 버렸다. 같은 도남동 주민이기도 한 승민씨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그의 삶에 가장 박수를 많이 보낸다.
인력거는 연중무휴.
겨울에도 인력거를 몬다. 그래서 누구보다 봄을 먼저 채집할 수 있다. 페달링 하다가도 툭하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잘 계셨죠’를 연발. 접촉사고 방지와 시장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인사말이 봄햇살보다 더 따사롭다.
“동피랑은 벽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심보다 열흘 빨리 봄이 오는 것 같다. 벽화가 평균 1℃ 이상 통영 기온을 업시켜주는 것 같다.”
그가 나그네를 인력거에 태운다. 보조 가속장치 탓인지 꽤 속도감이 느껴진다. 강구안에 정박된 거북선이 주마등처럼 휙 지나간다. 시장통으로도 들어간다. 시장 아줌마들은 대다수 살갑고 성실하고 겸손한 이 사내의 팬이다.
◆통영 섬지기 강제윤 시인의 봄
통영의 봄은 자연보다 ‘사람’에서부터 올 것 같다.
조금은 아이처럼 살아가는 몇 명의 통영파 예인들. 그들을 이 계절, 미항(美港)의 봄 전령사라고 불러보자. 한 명 한 명이 ‘봄꽃’ 같다.
‘현대판 윤선도’처럼 섬을 떠돌며 살아가는 강제윤 시인.
국내 첫 섬여행가이자 섬학교 교장이다. 통영항 주변의 ‘약장수’ 같은 도다리쑥국보다 더 고향스러운 쑥국을 먹기 위해 지난 5~6일 투어객과 함께 두미도를 트레킹했다. ‘자발적 가난주의자’인 그는 인권운동가로 살다가 수 년의 옥고를 치렀다. 1998년 귀거래사를 부르며 보길도로 귀향했다. 2006년 가을, 홀연히 청도 한옥학교 한옥 목수 과정을 졸업한 뒤 티베트를 다녀온다. 이후 한국의 사람 사는 섬 500여 개를 모두 걷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섬순례에 나선다. 8년간 300여개 섬을 익혔다. 독한 사람이다. 통영에 감전돼 2011년 봄부터 동피랑에 전을 깔았다. 그는 요즘 봄바람난 여행객은 물론 각종 인터뷰 요청으로 동피랑 집에 머물 여가가 없다. 이 봄날 통영에서 가장 바쁜 사내다.
◆사진작가 이상희와 멍게비빔밥
사진작가 겸 통영음식연구가, 그러면서 통영의 섬사진 전문가로 사는 이상희씨(53).
충남 조치원에서 태어나 청도, 대구 등을 거쳐 85년쯤 통영에 안착했다. 아내 김미라씨도 통영 사람. 2008년부터 4년간 미륵도에서 은둔하며 통영 섬사진 순례에 나선다. 강 시인과 비슷한 팔자라서 2013년 합작해 ‘통영은 맛있다’(생각을 담는 집 간)란 책을 펴낸다.
괜찮은 통영발 섬사진을 보려면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2012년 ‘별 하나 떨어져 섬이 되다’란 첫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 이전에 그는 전통음식 연구와 전수에 푹 빠졌다. 한식의 한 가닥인 교방음식을 파고들었다. 하산한 뒤 오너셰프로 변신해 여러 식당을 차렸다. 2012년 강구안 근처에 멍게 전문점 ‘멍게가’를 차렸다. 멍게가는 관광객은 잘 모르고 토박이들이 자주 이용한다. 본토의 맛은 역시 ‘진검’ 같다.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이 하나 있다. 언론에 봄도다리쑥국이 대서특필될 때 실은 도다리가 별로 맛이 없어진다는 점. 오히려 멍게비빔밥이 통영의 봄맞이 음식에 가까울 것 같았다. 도다리와 해쑥의 합방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입춘 즈음 남쪽 바다로 월동 갔던 도다리가 알을 낳기 위해 통영 근해로 접근한다. 이때 도다리는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올라 연중 제일 맛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때 섬의 해쑥도 머리를 치켜든다. 이 쑥과 도다리가 만나 통영봄쑥국을 낳는다. 알을 낳은 도다리는 육질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맛이 없어진다. 그렇지만 쑥은 더 맛있고 결국 억센 도다리는 미역과 밀애하는 게 낫고 쑥은 바지락 등 조개류와 신방을 꾸미는 게 효과적이 아닐까.
동시다발적으로 졸복도 맛이 들어 통영 곳곳엔 주당들의 속풀이 졸복국이 분출된다. 토박이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 나온 ‘호동식당’의 복국을 인정한다. 그 복국을 발치에서 바라보는 시락국. 마산권에서는 장어 대가리를 넣고 끓이지만 여기선 그냥 토장을 풀어 시래기국처럼 끓여내는데 충무김밥용 기본국으로 굳어졌다.
이씨가 멍게비빔밥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준다.
“멍게비빔밥에 무싹 등 새싹이 많으면 맛을 떨어뜨린다. 참기름은 괜찮지만 고추장은 사용하지 않는 게 맞다. 간은 멍게양념으로 잡으면 된다. 멍게를 자그마하게 자른 뒤 거기에 파, 마늘, 참기름 등을 적당량 넣고 무친뒤 냉장고에 반나절 안쳐둔 뒤 사용하면 된다. 멍게양념은 밥 한 공기당 딱 50g이 적당하다. 해초·나물류의 비율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터득할 수 있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비지만 여기선 숟가락으로 힘껏 비벼야 멍게 육즙이 밥알에 스며든다.
멍게비빔밥은 통영비빔밥의 한 갈래로 보인다. 미륵산 케이블카 근처에 있는 통영시 도남동 ‘통영비빔밥’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통영비빔밥은 진주, 진해 등과 달리 해초비빔밥이 아니고 ‘나물비빔밥’으로 불린다. 멍게비빔밥보다 해초가 덜 들어간다. 겨울에는 톳, 청각, 물미역 등을 넣지만 그래도 나물류가 축을 이룬다. 탕으로는 홍합, 바지락, 문어 등이 들어간 ‘두부탕국’이 인상적이다.
그가 나그네를 위해 멍게비빔밥을 내놓았다. 거북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는 굴과 물메기, 대구 등이 끝물을 맞으면 통영은 멍게세상으로 기운다고 말했다. 2년 자란 양식 멍게는 2월에 첫 출하를 하게 된다. 이후 5월에 맛의 정점을 찍는다. 이후 양식멍게는 높아진 수온 때문에 몸이 쪼그라든다. 하절기엔 돌멍게의 세상. 통영의 멍게 양식은 1970년부터 시작된다. 73년 통영 사람 최두관씨가 자연산 멍게의 씨를 받아 양식을 한 게 최초란다. 전국 생산량의 70%가 통영산 멍게다.
글·사진= 통영에서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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