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감
〈영남일보 DB〉 |
수상 소식을 듣고 팔거천을 잠시 거닐었습니다. 긴 여름을 견딘 청둥오리, 왜가리가 찬물에 발을 담그고 무언가를 궁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억새와 벚나무 잎들도 자신을 물들이고 소식(小食)하며 겨울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도 저들도 한 생을 살고 떠난다는 유한성 앞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마음이 강물처럼 일렁였습니다.
글을 읽는 작업이 입고(入古)라면, 글을 쓰는 작업은 출신(出新)이 아닌가 합니다. 고전이 된 한 권의 책을 읽고 어떤 새로운 시각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독자로서의 저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만약 새로운 감각이나 느낌, 사유가 없다면 저는 벌써 그 고전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그네'라는 인생의 은유와 상상력을 통하여 간신히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의 괴로움에 방점을 둔다면 입고출신(入苦出身)이라는 말이 더 적확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설적으로 독서와 쓰기의 괴로움 속에서 기쁨과 환희심을 얻기도 합니다. 새의 무기가 날개라면 인간의 무기는 독서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독서를 통하여 문화를 적층하고 발전시켜 왔을 것입니다. 독서는 마음공부이자 마음 살림입니다. 독서를 통하여 마음의 거울에 낀 먼지를 닦아내고 탐욕의 불길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박경한 |
독서를 통한 기쁨과 환희심의 심연에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여의주(如意珠) 하나씩을 갖고 살아갑니다.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돌멩이가 아니라 보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행복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강박관념처럼 따라다니는 행복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존재이므로 행복에 대한 과잉은 불행의 심화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도인(道人)이 된 건 아니지만 행복 지상주의의 과욕을 좀 내려놓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음 삼매, 독서삼매를 체험하면서 탐욕에서 벗어나 잠시 무지(無智)의 불을 끄고 평상(平常)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불행도, 완전한 행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인을 통하거나 자기 밖에서 얻는 행복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내면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고독을 잘 헤쳐 나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리라 추측해 봅니다. 이렇게 마음공부를 잘하여 행복의 근육을 키운 사람은 아마도 세상의 타인들과 내면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독서와 글 쓰기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작업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고양되고, 글을 읽는 사람은 위로를 받기 때문에 독서는 감로수이자 묘약입니다.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고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는 저의 독서와 글 쓰기의 맨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꼼꼼하게 원고를 읽어주신 영남일보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행사 진행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세계에 균열을 내면서 그네 저쪽을 창조하는 독서가께도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