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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수상작] 중·고등부 최우수상/김민기 '<주>민기제과'

2024-10-24 09:17

'비스킷'을 읽고

[제31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수상작] 중·고등부 최우수상/김민기 민기제과
중·고등부 최우수상 수상자 김민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제성이랑 눈이 마주쳐 버렸다. 날카롭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것 같은 눈을 가진 그는 이상하게도 날 이끌었다. 나는 그런 독하고 나쁜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와 다른 모습에 혹한 걸가?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더 독하고 나쁜 아이였다는 것을, 오직 겉으로 본 날카로운 눈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비스킷이 된 아이들을 도와줘서 다시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려주는 제성이의 모습을 보며 내 주위에 비스킷 같은 아이들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완벽한 비스킷은 아니지만 존재감이 없는 아이는 있었다. 그 아이는 학기 초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구도 없었으며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이 "어! 쟤 와 있었네!"라고 할 정도였다. 그 아이는 찐따의 느낌이었고, 모두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 분위기도 형성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생각했다. '에이, 자기가 편해서 저렇게 계속 가만히 있는 거겠지.'그 생각은 큰 억측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선생님과 상담도 했다고 한다. 그 아이는 그런 생활이 싫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비겁한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 아이를 구할 힘이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인싸였기 때문에 항상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때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면, 말을 걸어주었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편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며,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 따돌림에 동참하는 사람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악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만약 그때 내가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데리고 말을 걸었으면 그 아이는 지금까지 따돌림 당하지 않고 어떤 무리에 끼여서 평범한 학생다운 생활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없어야 하고, 사람들은 최대한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해주며, 사랑해 줘야 한다. 그리고 소외된 아이들의'이름'을 부르며 그 아이와의'관계'를 쌓아야 한다. 우리는 관계를 쌓으며 서로가 비스킷이 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중 생각났다. 나는'그 아이'의 이름을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우리 반 그 누구도 부르지 않는 이름이었다. 있지만 없는 아이의 이름은 이정윤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진 못했다. 여기에 이렇게 글로 쓰는 것도 어색하다.

지금까지 나는 비스킷인 아이들을 눈치는 챘지만 나의 일이 아니라 그냥 넘어갔다. 나와 친한 친구가 아니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나와 친한 친구들만 챙겼고, 이런 행위들이 내 무리 밖의 사람들을 비스킷으로 만들었다. 나는 정윤이와 아이들을 비스킷으로 만드는'비스킷 생산자'였을 뿐이다. 그들은 비스킷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아이들이'그 아이'처럼 되지 않게 친해지고 좋은 관계를 맺고,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도움도 주는 등 최대한 노력을 할 것이다.

비스킷 생산자는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우리를 비스킷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숫자'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대체하려고 한다. 아이들은 성적을 통해서, 어른들은 연봉을 통해서 말이다. 당장 나도 성적 때문에 사람을 비스킷으로 만들어 왔다. 나는 이번에 전교 1등을 했다. 물론 정확한 등수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최상위권이고 나와 비슷한 아이들은 암암리에 서로서로 알 수밖에 없다. 그 아이들과 성적을 비교해보니 내가 1등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쌓았던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성적을 바탕으로 '등급'을 나눈 것이었다. 나와 제성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나는 아이들의 이름으로 등급을 나눠서 아이들을 비스킷으로 만들지만 제성이는 비스킷이 된 아이들을 구해내고 도와준다는 것이다. 나의 눈은 제성이와 달리 날카롭지 않았지만 마음씨와 친구를 대하는 태도는 내가 훨씬 날카로웠다. 이제 우리의 세상은 오직 숫자가 큰 '1등급 비스킷'만이 살아남아서 나머지 등급들을 비스킷화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며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이러다가 코로나가 끝나고 난 다음 친구들과의 사이가 멀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되었다. 코로나 때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혼자 지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공부에 몰입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게 좋았다. 사람은 그저 내가 밟고 올라갈 계단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 말고 다른 '비스킷 생산자'들도 이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타인을 들일 수 있는 '의도'가 없다. 다른 사람을 서로 인지하며 살아야 비스킷의 수가 적어질 텐데 사람들은 그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격리되어서 서로 잘 소통하지 않았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적응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만큼은 이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이 세상 사람을 아무도 무시하지 말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존중하고, 사랑해주며, 격려하고, 도와준다면 우리는 이'비스킷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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